반응형 사진조각1076 [오일장] 현풍백년도깨비시장 [오일장] 현풍백년도깨비시장 토요일이 마침 현풍장날(5.10일장)이어서 오랜만에 현풍장에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도 현풍고등학교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걸어서 시장에 갔습니다. 그동안 운동장이 인조잔디구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시장 쪽에 못 보던 건축물이 보입니다. 현풍백년도깨비시장 안내 설치물도 처음 봅니다. 가로등 장식. 블루베리 묘목. 엄청 귀여운 강아지. 마당 있는 주택에 살고 있다면, 바로 입양하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습니다. 못 보던 건축물은 주차장/상가 건물이었습니다. 현풍백년도깨비시장 홈페이지(http://hyunpungdokaebi.com/)에 보면, 옥상 주차장은 80여대가 주차가능하며, 무료로 이용가능하다고 나옵니다. 상가 건물 실내 모습입니다. 건물 중앙에는 식당이, 양쪽으로는 상점이 들어서 .. 2014. 4. 8. [창녕] 만옥정 공원의 창녕현감비군, 창녕현감선정비군 [창녕] 만옥정 공원의 창녕현감비군, 창녕현감선정비군 신라 진흥왕 23년부터 조선 말 사이에 창녕에 부임한 현감/부사/어사/관찰사들의 선정비(善政碑) 20여 기이다. 창녕군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1970년 5월 30일 현 위치인 만옥정공원 내로 옮겨 한곳에 모아 두었다. 선정비 또는 공덕비란 백성을 어질게 다스린 벼슬아치를 표창하고 기리기 위해 세우는 비석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선정과 관련 없이 부임한 관리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임할 때 관례처럼 건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2014. 4. 7. [창녕] 만옥정 공원의 퇴천 삼층석탑 [창녕] 만옥정 공원의 퇴천 삼층석탑 퇴천 삼층석탑 (兎川 三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호 소재지: 경남 창녕군 교상리 281-1 - - - 민가 안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 10월에 해체, 보수하여 창녕의 만옥정 공원으로 옮겨 세웠다. 탑이 있던 마을 주변에서 기와조각과 자기조각들이 발견되어 사찰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절 이름이나 역사를 전하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탑은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수평을 이루던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으며,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통일신라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기단의 일부가 약가 파손되기는 했지만 통.. 2014. 4. 6. [창녕] 만옥정 공원의 창녕지구 전승비 (UN 전적비) [창녕] 만옥정 공원의 창녕지구 전승비 (UN 전적비) 국가 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42-2-26)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7일 함양과 거창을 점령한 북한군은 이곳 창녕과 현풍을 탈취한 뒤 대구를 포위 공격하려는 계획으로 낙동강 돌출부인 남지읍 박진나루, 오항나루, 유어면 부곡리를 건너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계속적인 공격을 가하여 왔으나 미군 제24사단 및 제2사단의 치열한 역습으로 적의 기도를 좌절시켰다. 특히 8월 13일 6회에 걸친 적의 발악적인 공격을 저지하고 9월 15일까지 일진일퇴의 혈투를 한달 이상 계속하여 북한군 3개 사단의 큰 병력을 섬멸하였다. 조국수호의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방어선을 사수하고 UN군의 인천상륙작전과 아군의 총 반격으로 북진의 기.. 2014. 4. 6. [창녕] 만옥정 공원의 창녕 척화비 [창녕] 만옥정 공원의 창녕 척화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8호 창녕 척화비 (昌寧 斥和碑) 소재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 - - - 척화비란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치르면서 그러한 의지를 더욱 굳혀 국민들에게 서양세력의 침략을 더욱 강력히 경고하고자 서울 및 전국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이다. 만옥정 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는 이 비는 땅위로 드러난 얇은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모습으로, 그 앞면에 대원군의 쇄국의지가 담긴 강한 어투의 비문을 적어 놓았다. 고종 8년(1871) 신미양요를 치른 후 같은 해 일제히 세운 것으로, 한일합방이 되면서 대부분 철거되거나 훼손되었는데, 이처럼 몇 기의 비들이 곳곳에 남아 그 역사적인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출처:.. 2014. 4. 4. [창녕] 만옥정 공원의 창녕 객사 [창녕] 만옥정 공원의 창녕 객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1호 창녕객사 (昌寧客舍) 소재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22 - - - 객사는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 건물로 고을 수령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정당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좌·우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고 1924년 군수 이장희가 시장용 건물로 쓰기 위해 창녕읍 술정리로 옮겼다가 1988년 이곳 만옥정에 옮기고 보수했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1층 건물로, 지붕 옆모습이 사람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바닥은 따로 마련하지 않고 기단 위에 곧바로 세웠으며 기둥 사이에는 벽을 쌓지 않아 주위의 경관을 볼 수 있게 했다. 앞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의 기둥 사이에 나무 2개를 가로.. 2014. 4. 4. [국보 제33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국보 제33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이 비는 신라 진흥왕(540~576)이 세운 기념비이다. 흔히 순수비로 통칭되나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에 있는 순수비처럼 순수관경이란 말이 없고 다만 왕이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을 열거했으므로 따로 척경비라 일컫는다. 단양 적성의 진흥왕비와 비의 성격이나 형태가 거의 비슷하다.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 과인(寡人)은 어려서 왕위에 올라 정사(政事)를 보필(輔弼)하는 신하에게 맡겼다. … 일의 끝에 … 사방(四方)으로 … 널리 … 이익(利益)을 취하고 수풀을 제거(除去)하여 … 토지(土地)와 강토(疆土)와 산림(山林)은 … 대등(大等)과 군주(軍主), 당주(幢主), 도사(道使)와 외촌주(外村主)는 살핀다. … 고로 … 해주(.. 2014. 3. 30. 대구 신천동로, 경대교 도청교 사이 대구 신천동로, 경대교 도청교 사이 2014. 3. 27. [중요민속문화재 제10호] 창녕 술정리 하씨 초가 [중요민속문화재 제10호] 창녕 술정리 하씨 초가 창녕 술정리 하씨 초가 (昌寧 述亭里 河氏 草家) 소재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시장1길 63 (술정리) 시대: 조선시대 창녕 지방에 있는 옛집으로 안채·사랑채·대문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안채만 지정되어 있다. 안채는 현소유자 하경목 씨의 18대 조상이 이 마을에 들어와 세종 7년(1425)에 지은 건물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건륭 25년’이라는 기록이 발견되어 이때에 다시 지었거나 수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문화재청] 이 집은 아담한 사랑채 뒤편으로 안채가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안채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안채는 보통 초가삼간이라 부르는 일자형 홑집이다. 오른쪽의 첫 칸이 부엌이며 다음 칸이 안방이고 이어서 대청, .. 2014. 3. 26. [국보 제34호]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국보 제34호]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창녕장에서 걸어서 5~10분 이내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석탑 주변에는 주차장, 화장실 등이 갖춰져 있어 관람하기 편리합니다. 이 탑은 이중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크기와 조각수법으로 보아 불국사 석가탑과 비교될 만한 통일신라 초기 석탑의 위풍이 있는 아름다운 탑이다. 1965년 문화재관리국의 해체수리/복원 과정에서 사리 7과와 동제잔형 사리용기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현재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으나 탑이 크고 짜임새가 장중하며 훤칠해 기품 있게 보인다. 이 탑의 명칭에 동(東)자를 붙인 것은 한 절터 안에 2개의 탑이 세워져 있어서가 아니고, 술정리에 두 개의 탑이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하여.. 2014. 3. 25. 이전 1 ··· 26 27 28 29 30 31 32 ··· 10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