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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각1076

대구 달성군 용연사(1)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882번지* 지도 보기옛날 이 절터의 동구에 용추가 있어 등천했다하여 붙이게 된 용연사는 신라 신덕왕때 보양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세종 1년(1419) 해운당 천일대사가 중건하였다.그 후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하게 되어 선조 36년(1603) 홍제존자가 청하당 인잠, 탄옥, 경천 등에게 명하여 재건한 바 있으나 다시 효종1년(1650)에 종각만 남기고 소실되었다.그 후 노숙이 홍묵, 계홍 등 24인과 함께 10년이 걸려 재건하고 경종2년(1722)에 장노찬 화가가 단청을 한바 있으며 영조 2년(1726) 다시 화재로, 대웅전, 동서별당, 좌우승방이 소실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영조 4년(1728)에 세워진 것으로 극락전, 보광전, 관음전, 사명당 일주문 등을 .. 2009. 5. 30.
용연사 부도군 용연사 보궁 경내에 화강석으로 된 부도 7기가 있고 이곳에서 서편으로 300m 쯤 되는 곳에 부도 5기가 있다. 경내의 것은 낙파대사, 원계대사, 인악대사, 동운대사, 송파대사라고 이름 밝힌 것이 5기이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것이 2기이다.보궁 서편의 것은 무위당대사, 서귀당대사 치청, 반허당 법찬, 현진당 대숙으로 새겨져 있다.[출처 : 대구광역시 관광문화정보시스템] 2009. 5. 30.
용연사 석조계단 * 보물 제539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865번지* 지도 보기계단(戒壇)은 계(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를 수여하는 식장으로, 이곳에서 승려의 득도식을 비롯한 여러 의식이 행하여진다. 용연사 내의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이 계단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임진왜란(1592) 때 난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겼던 통도사의 부처사리를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이 다시 통도사로 옮길 때 용연사의 승려들이 그 일부를 모셔와 이곳에 봉안하였다 한다.돌난간이 둘러진 구역 안에 마련된 계단은 널찍한 2단의 기단(基壇) 위로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네 모서리마다 4천왕상(四天王像)을 1구씩 세워두고, 위층 기단은 4면에 8부신상(八部神像)을 돋을새김 하였는데, 뛰어.. 2009. 5. 30.
대구 달성군 용문사 부도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1137-1번지* 지도 보기달성군 화원읍 인흥마을을 지나 본리리 마비정 마을 입구에 있는 용문사 표지판을 따라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용문대천이 그 절경을 뽐낸다.그 뒤에 용문사가 버티고 있으며 이 용문사 입구로 들어가는 오른쪽 산기슭에 ‘용문사 창건주 수월당 대사’라고 적힌 부도 2기가 놓여있다.부도는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돌탑을 의미하는 데 보통 그 사찰의 창건주의 유골을 보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용문사 부도에는 용문사 창건주 수월당대사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절을 지은 스님의 부도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도굴꾼들이 한 차례 뒤졌던 것을 다시 세웠다고 전하는 이 부도는 넓은 자연석 받침 위에 종 .. 2009. 5. 30.
대구 달성군 예연서원(2) * 전사청입니다.* 편액을 보면전사청인데, 기숙사인 동재 역할을 하는 모양입니다,* 제물·제기 등 제사에 필요한 몇몇 도구들이 장판각 안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장판각입니다.* 장판각 뒤쪽 모습입니다. * 편액이 장판각 안에 보관되어 있더군요.* 전사청.장판각 앞 마당입니다. 2009. 5. 29.
대구 달성군 예연서원(1) * 대구시 기념물 제11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 534번지*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 1등 공신인 의병 대장 충익공 망우당 곽재우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광해군 10년에 충현사를 건립하고 현종 15년(1674)에 당시 현감 유천지가 규모를 확장한데서 비롯되었다. 정유재란 때 안음현감으로 황석산성의 수성장을 제수 받고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곽재우 선생의 재종숙 존재 곽준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였는데 숙종 3년(1677)에 예연서원이라 사액되었다.[출처 : 관광지식정보시스템]* 외삼문인 숭의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 외삼문에서 내려다 본 마을 전경.* 사진 중앙에 있는 은행나무가 곽준 나무입니다. * 예연서원 강당 경의당. * 강당에서 바라본 외삼문. *내삼문인 충의문입니다. * 내.. 2009. 5. 29.
대구 달성군 열부 창녕성씨 정려각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619-1번지* 창녕 성씨의 나이 18세에 폐백을 받고 시집오기 전에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 와서 슬피 울면서 눈을 감고 사물을 보지 아니하며, 음식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다. 집안 어른들이 갖은 방법으로 달래 눈을 뜨고 입을 열기를 청한 즉 이르기를 “남편이 이미 죽었으니 누구를 위하여 입을 열고 눈을 열겠습니까?” 하고 눈과 입을 다물고 11일 만에 죽고 말았다. 이곳 사람들은 성씨를 입을 닫고(成氏含口) 죽은 열녀라 부른다.[출처 : 관광지식정보시스템]* 밀양 박지운의 아내였던 창녕 성씨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성종 25년(1494)에 정려를 내려 후손들이 그 행적을 기리기 위해 비각을 건립하였습니다. * 지도 보기 2009. 5. 29.
대구 달성군 영사각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392번지* 추계추씨 동산공 추상의(1787∼1832)의 유덕을 사모하여 1839년 2월에 주민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향민들이 만서우(晩棲于) 동산하(東山下)한 그를 동산공(東山公)이라 작호 하였으며, 유택을 추모하여 건각(建閣)하고 영사각이라 하고 아울러 불망비(不忘碑)를 세웠다.[출처 : 관광지식정보시스템]* 출처 바로가기 * 지도 정보 2009. 5. 29.
대구 달성군 송병규 효자비 * 소재지 : 대구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 318* 다음 지도 보기송병규는 조선 고종때 경연관을 지냈으며 문익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는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모친 병환에 손가락을 끊어 수혈로 회생케 하였는데 3일후 다시 모친의 병환이 위독하게 되자 또 손가락을 끊어 수혈함으로서 3년을 쾌차하게 되었다. 이러한 효성이 후손들에게 귀감 되게 하고자 효자비를 조정에서 내렸다.또한 을사보호조약 체결 당시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여 순절하였으며 조정에서는 정려문을 세워 길이 공의 효성과 충절이 후세에 빛나도록 하였다.[출처 : 달성군] * 주변 문화재 : 효부 경주김씨 비각-바로 길 맞은편에 있습니다. 2009. 5. 26.
대구 달성군 수봉정사 정자인 수봉정사는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의 대표적인 건물로 세거지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기도 하고 일족의 모임을 열었던 건물로서 정원의 꾸밈이 아름답다.규모는 1랑 2동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산형대문(山形大門)이다.수봉정사는 1936년 일제 때 문영박(文永樸 : 1880∼1930)의 인격과 학식을 기리고 후손들의 학문과 교양을 쌓기 위한 교육 장소로서 자제들이 건립한 것인데 자는 장지(章之), 호는 수봉(壽峰), 본관은 남평(南平)이다.[출처 : 대구광역시 관광문화정보시스템]* 수봉정사 대문채. 평소에는 잠겨 있습니다.* 산형대문 =고주대문(高柱大門)= 솟을대문. * 솟을대문이란 좌우 칸의 행랑채 지붕보다 .. 2009.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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