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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각

경주 교촌마을

by 영원파란 2013.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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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교촌마을

 

 

 

경주 교촌마을 안내.

 

 

경주 교촌은 신라 신문왕 2(682)에 설립된 한반도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있던 곳이다. 신라의 국학은 고려시대에는 향학,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졌다. 마을 이름이 교동/교촌/교리 등으로 불린 것은 향교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촌은 신라의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사랑을 나눈 요석궁이 있던 곳이다.

 

주 교촌에는 참다운 부자의 모습을 보여준 최부자의 고택이 있다. 경주 최부자는 12400년 동안 만석의 재산을 지켰고, 9대 진사를 배출했다. 가난한 이웃을 도우며 모범적인 청부의 윤리인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였다.

 

주 교촌에는 향교와 최씨 고택 등 전통한옥이 많이 남아 있으며, 첨성대/월성/계림 등 중요한 유적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신라문화와 조선문화가 함께 있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

중요민속자료 제27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69

 

이 가옥은 경주최씨의 종가로 1700년경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월성을 끼고 흐르는 남천 옆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았고, 문간채·사랑채·안채·사당·고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99칸이었다고 하는데 사랑채와 별당은 1970년 불타고 주춧돌만 남았다. 안채는 자 모양이고 대문채는 자 모양이다.

 

사당은 사랑채와 서당으로 이용된 별당 사이에 배치되어 공간적 깊이를 느끼게 한 특징이 있다. 조선시대 양반집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가치가 크다.

  

최씨 집안이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서 이곳 교동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것은 조선 중기 무렵이다. 여기에서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학문에도 힘써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경주 교동 법주.

중요무형문화재 제86-3호.

 

교동 법주는 경주 교동 최부자댁에 전해 오는 비주로 조선 숙종 때 궁중에서 음식을 관장하던 관직에 있던 최국선이 고향으로 내려와 최초로 빚은 것으로 궁중에서 유래된 술이다. 술 빚기는 9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가 적기이다.

 

원료는 밑술로 밀누룩과 찹쌀을 쓰고, 덧술로 찹쌀밥을 넣어 빚는데 100여일간 숙성시킨다. 숙성된 교동 법주는 외관이 밝고 투명한 미황색을 띠며 특유의 향기와 감미를 내는 부드러운 술이다. 현재 교동 법주의 기능보유자는 최경이며, 최국선의 10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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