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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6일차(7) - 스탠퍼드 대학, 칼레의 시민

by 영원파란 2010.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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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칼레의 시민"

칼레는 도버 해협에 맞닿아 있는 프랑스 북부의 소도시다. 14세기 중반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로 발발한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초기인 1345년 노르망디에 상륙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중 이 도시에서 의외로 완강한 저항에 부닥쳤다. 11개월이나 버티는 바람에 전체 작전에도 적잖은 차질을 주었다. 마침내 항복 선언을 받아낸 에드워드 3세는 당초 대학살로 보복하려다 도시 대표자 6명만 처형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대신 시민들 스스로 대상자를 선정해 성문 열쇠를 바치라고 명했다.

대학살은 면했으나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선뜻 나서는 이 없이 긴 침묵이 이어지던 끝에 한 사람이 "내가 6명 중 하나가 되겠다."며 일어섰다. 칼레 최고의 재력가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였다. 이어 시장, 법률가 등 귀족계급 5명(장 테르(Jean d'Aire), 자끄 드 위쌍(Jacques de Wissant), 피에르 드 위쌍(Pierre de Wissant), 장 드 피엔느(Jean de Fiennes), 앙드리위 당드르(Andrieu d'Andres))도 앞 다퉈 손을 들었다. 다음 날 목에 밧줄을 감고 맨발로 영국군 진지를 찾아온 이들은 처형 직전 기적처럼 목숨을 구하게 된다. 임신 중이었던 부인 필리파 왕비의 간청을 에드워드 3세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동시대 사람인 프로와사르에 의해 빠짐없이 기록됐고 6인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었다. '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이 말은 본래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지칭했다.

일천 여년의 세월을 거쳐 칼레에서 발현된 이 정신을 기리기 위해 1884년 칼레 시장은 로댕에게 위대한 6인의 모습을 형상화 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로댕이 10여년에 걸쳐 완성한 조각을 본 시민들의 실망은 컸다. 단호한 의지의 초인적인 영웅상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고뇌하는 평범한 인간상 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각은 그래서 더 유명해졌다. 그들의 순결한 정신과 행적을 떠올리며 조각을 감상하노라면 소란스러웠던 그날의 칼레시장통에 서 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여기에 표현된 6인의 인물은 칼레시에 대한 헌신적 정신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의 딜레마에 고민하고 각자가 각각 자신과 싸우느라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한 사람 한 사람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초인적인 영웅이라기보다는 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거기에 있다. 로댕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각 인물상에 각각 다른 자세를 취하게 하여 심리적으로 각 인물을 일체화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이 6인의 군상의 요소가 교묘하게 교차되어 각 개인의 표현이 평등하게 중요시되고 있다.

이 기념상은 당초 칼레 시청에 설치될 예정이었으나,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바닷가 한적한 곳에 세워진 채 온갖 비난을 받았다. 당시의 칼레 시민들은 로댕의 사실주의적, 상징주의적 제작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칼레의 시민들이 기대한 것과는 달리 로댕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웅의 모습이 아닌 죽음의 공포 앞에 나가기를 주저하는 여러 인간들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한 것이 더욱 진실되고 아름다운 것을, 공포를 초월한 영웅을 만들기를 원했던 그 시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 했던 것 같다. 가족과 친구와 시민들을 위해 나서긴 했지만 진정으로는 죽음과 대면하기 결코 원치 않았던 그들, 우리와 똑같은 나약한 인간이기에 역설적으로 그들이 더욱 용감한 자들이라고 로댕은 생각했던 것 같다.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칼레의 시민"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용감해 보인다.

조각상은 나중에 로댕의 명성이 높아지자 현재 위치인 시청 앞 광장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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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대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조각상은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조각 하나 하나가 떨어져 있는데 반해, 칼레 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원본 조각상은 하나의 조각상으로 되어있습니다.

로댕은 이 조각상이 실물크기로 복제되는 것을 12개까지 허용하였으며, 스탠퍼드대학교에 있는 작품도 12개 실물크기 복제 조각상 중의 하나입니다.(라고 알고 있었는데, 로댕갤러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12개 복제품 목록에는 스탠퍼드대학교가 없음.)

행복하게도(?) 우리나라에도 하나가 있으며,

서울 삼성생명 본관 내 로댕갤러리(http://rodin.samsunglife.com/)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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