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보기24648 대구 달성군 열부 창녕성씨 정려각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619-1번지* 창녕 성씨의 나이 18세에 폐백을 받고 시집오기 전에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 와서 슬피 울면서 눈을 감고 사물을 보지 아니하며, 음식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다. 집안 어른들이 갖은 방법으로 달래 눈을 뜨고 입을 열기를 청한 즉 이르기를 “남편이 이미 죽었으니 누구를 위하여 입을 열고 눈을 열겠습니까?” 하고 눈과 입을 다물고 11일 만에 죽고 말았다. 이곳 사람들은 성씨를 입을 닫고(成氏含口) 죽은 열녀라 부른다.[출처 : 관광지식정보시스템]* 밀양 박지운의 아내였던 창녕 성씨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성종 25년(1494)에 정려를 내려 후손들이 그 행적을 기리기 위해 비각을 건립하였습니다. * 지도 보기 2009. 5. 29. 대구 달성군 영사각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392번지* 추계추씨 동산공 추상의(1787∼1832)의 유덕을 사모하여 1839년 2월에 주민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향민들이 만서우(晩棲于) 동산하(東山下)한 그를 동산공(東山公)이라 작호 하였으며, 유택을 추모하여 건각(建閣)하고 영사각이라 하고 아울러 불망비(不忘碑)를 세웠다.[출처 : 관광지식정보시스템]* 출처 바로가기 * 지도 정보 2009. 5. 29. Song Around the World `Stand By Me` 2009. 5. 27. 대구 달성군 송병규 효자비 * 소재지 : 대구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 318* 다음 지도 보기송병규는 조선 고종때 경연관을 지냈으며 문익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는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모친 병환에 손가락을 끊어 수혈로 회생케 하였는데 3일후 다시 모친의 병환이 위독하게 되자 또 손가락을 끊어 수혈함으로서 3년을 쾌차하게 되었다. 이러한 효성이 후손들에게 귀감 되게 하고자 효자비를 조정에서 내렸다.또한 을사보호조약 체결 당시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여 순절하였으며 조정에서는 정려문을 세워 길이 공의 효성과 충절이 후세에 빛나도록 하였다.[출처 : 달성군] * 주변 문화재 : 효부 경주김씨 비각-바로 길 맞은편에 있습니다. 2009. 5. 26. 대구 달성군 수봉정사 정자인 수봉정사는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의 대표적인 건물로 세거지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기도 하고 일족의 모임을 열었던 건물로서 정원의 꾸밈이 아름답다.규모는 1랑 2동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산형대문(山形大門)이다.수봉정사는 1936년 일제 때 문영박(文永樸 : 1880∼1930)의 인격과 학식을 기리고 후손들의 학문과 교양을 쌓기 위한 교육 장소로서 자제들이 건립한 것인데 자는 장지(章之), 호는 수봉(壽峰), 본관은 남평(南平)이다.[출처 : 대구광역시 관광문화정보시스템]* 수봉정사 대문채. 평소에는 잠겨 있습니다.* 산형대문 =고주대문(高柱大門)= 솟을대문. * 솟을대문이란 좌우 칸의 행랑채 지붕보다 .. 2009. 5. 26. 대구 달성군 소계정 *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1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기세리 714번지* 이 건물은 향리에서 후학 양성에 힘쓴 소계 석재준을 기리기 위해 1923년에 그의 제자들이 건립한 것으로, 그의 호를 따서 소계정이라 하였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으로, 평면은 가운데에 마루를 두고 양옆에 방을 둔 영남지방의 일반적인 정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자는 기세리 마을 안쪽에 서향하여 자리잡고 있습니다. 2009. 5. 24. 대구 달성군 성하리 느티나무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성하리 287-3번지. 구마고속도로 현풍휴게소 내.* 나무의 특징 : 근원부근에서 2가지가 벌어져 1그루를 이루며, 9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어 수형이 매우 아름답다. 가지받침대 4개를 설치하였고, 외과수술을 실시하였다.* 얽힌 이야기 : 정월대보름에 마을에서는 마을의 평온과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정성껏 동제를 지내고 있는 당산나무로서 제를 올리고 난 후에는 금줄을 쳐 놓아 일반인들이 함부로 나무에 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신성함을 표시하며 제사를 지낼 때 정성이 부족하면 우환이 생긴다고 한다. 언젠가 제사를 지내려고 제물을 차려 놓았는데 어디서 왔는지 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 제사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는데 돼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하며, 1976년 구마.. 2009. 5. 24. 대구 달성군 삼충각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743* 육신사, 도곡재로 가는 마을 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주차장 인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조선 영조 5년(1775)에 정려(旌閭)된 충정공 박팽년과 순조 31년(1831)에 정려된 그의 아들 박순(朴珣)과 박순의 유복자였던 박일산(朴壹珊) 등 3세가 정려되었으므로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경상도관찰사이던 김양순(金陽淳)이 71주(州)의 수령들에게 경비를 거두어 비석을 세우고, 비각을 지어 삼충각이라 하였다.비각은 정측(正側) 1칸의 익공(翼工)집이며, 맞배지붕으로 높이 4m이고, 비석은 전면에 순천박씨 삼세정충기실비(順天朴氏 三世旌忠記室碑)라 쓰여 있으며, 오석(烏石)으로 높이 1.7cm, 폭 60cm, 두께 30cm 이며, 홍문관교리 박승현(朴升鉉)이 찬(撰.. 2009. 5. 24. 대구 달성군 사효자굴 망우당 곽재우 선생의 사촌동생인 재훈에게 결, 청, 동, 호의 네 아들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이들이 병중이던 아버지를 모시고 현동의 유가산에 있는 동굴에 숨어서 피난하던 중 일본군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 일본군이 아버지를 해치려 하자 네 아들들이 아버지를 호위하다가 차례로 왜적들에게 살해당하고 아버지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일본군들도 아들의 효성에 감동하여 그 아버지를 풀어주면서 등에 “네 효자 아들의 아버지(四孝子之父)”라는 글을 써 붙여 보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선조는 정려를 내렸다. 고을사람들도 이곳 동굴에 ‘사효자굴’이라 쓴 비석을 세워 아들들의 지극한 효성을 기렸다. 2009. 5. 23. 대구 달성군 본리동 삼층석탑 * 관련글 : 광거당,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한때 삼국유사를 집필하신 일연스님과 관련된 사찰은 군위군 소재 인각사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폐사되어 그 흔적만 남아있지만 대구에도 삼국유사와 스님과 관련된 사찰이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매일신문 기사를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폐사된 인흥사의 위치는 대구 달성군 본리 남평문씨 세거지 일대이며, 현재 폐사지 흔적의 일부는 수봉정사 앞 논 중앙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첨부된 사진은 옛 인흥사의 삼층석탑이며, 다른 1기의 석탑은 경북대학교 야외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2009. 5. 20. 이전 1 ··· 2445 2446 2447 2448 2449 2450 2451 ··· 246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