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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각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

by 영원파란 2013.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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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6] 경주 월성

 

 

 

월성에서 봐라본 첨성대.

 

 

주변 유적지명
(1) 석빙고   (2) 동궁과 월지   (3) 첨성대   (4) 계림   (5) 황룡사지
(6) 국립경주박물관   (7) 인용사지   (8) 월정교   (9) 경주향교   (10) 남천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387-1

 

이곳은 신라시대에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하여 '신월성(新月城)' 또는 '월성(月城)'이라 불렸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시대부터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려 오늘에 이른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瓠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석탈해왕(昔脫解王)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석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그 후 파사왕(婆娑王) 22(101)에 여기에 성을 쌓고 옮긴 다음부터 역대 왕이 이 월성에 살게 되었다.

  

남쪽으로는 남천이 흘러 자연적인 방어 시설이 되었고, 동쪽-북쪽-서쪽으로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넓은 도랑인 해자(垓字)를 팠다.

  

남문, 북문, 인화문 등과 임해전(臨海殿)으로 통하던 임해문이 있었으며, 그 밖에 많은 부속 건물들이 있었다. 성 안에는 조선시대 얼음창고인 석빙고가 남아 있다.

 

 

 

 

경주 동궁과 월지

사적 제18호

 

이곳은 통일 신라 시대 궁궐터의 하나로, 임해전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들과 함께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14(674)"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라는 기록이 있고, 19(679)에는 "동궁을 지었다.", 경순왕 5(931)에는 "고려 태조 왕건을 위하여 임해전에서 잔치를 베풀었다."라는 기록이 있어 월지와 동궁의 축조 연대와 주요 건축물들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 조사에서 신라 때 축조되었던 월지의 모습 대부분이 확인되었고, 동궁 건물터에서 출토된 기와와 보상화문전에 새겨진 기년명을 통해 축조 연대가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월지는 조선 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임해전은 신라 궁궐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월지는 동궁의 원지로서 신라 원지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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