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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글

대구 북구 매양서원

by 영원파란 2013.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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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구 매양서원

 

 

 

야성송공아헌선생기적비(冶城宋公啞軒先生紀積碑).

 

 

 

[매양서원의 연혁]

소재 : 대구광역시 북구 매천동(매남) 46번지

 

매양서원은 서기1705(숙종31, 을유년) 유림단체의 여러 향사와 매헌공과 매계공이 5대조 아헌선생의 유지를 봉승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매양서원을 창건하였다. 그 후대에 매헌공/남촌공/문양공 삼대가 학덕의 명망이 높았고, 그 뒤로도 선비를 배출한 유사의 요람이 된 재실이다.

매양서원은 서기1868(고종5, 무진년) 대원군에 의하여 훼철되었다가 겨우 복건 유지해 오던 중 연도는 알 수 없으나 두 차례에 걸쳐 소실되는 재난을 겪고 20064월에 후손들의 단성을 모아 재건 복원하였다.

주향 : 아헌공(송원기)

종향 : 매헌공(송명기), 남촌공(송이석)

향사 : 매년 음 1230

 

 

[야성송씨 매남 세거지의 유래]

 

시조공으로부터 20세인 증 통훈대부 장악원정 시철공의 조고 아헌선생 묘위의 횡장 직장의 양론의 이설(비안함로)에 따라 도강백리하여 칠곡군 칠곡면(고평) 지금의 관음동에 이주하게 되었다. 그 뒤에 1689(숙종15) 22세 성와공과 성헌공 형제분이 매헌공 10세때 식솔을 거느리고 지금의 매천동(매남)에 이거하여 주로 인의공 계파 아헌공파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게 되었는데 3대가 학덕이 고매하여 유림의 승모를 받았고, 그 뒤로도 여러 유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문향이 되었다.

매남 이주 1대가 매헌공이요, 2대가 남촌공이며 3대가 문양공이다. 매헌공과 남촌공은 진사시에 합격하고, 문양공은 학문과 덕망이 높았으며 인품이 뛰어나 지방 유림에서 극진한 추앙을 받았다. 그래서 칠곡일대와 대구근교 유생들이 매남마을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려 읍하는 예를 갖추어 지났다고 전하니 이때가 아헌공파의 전성기라 하겠다. 이렇게 되어 관음동, 낙산동, 매천동(매남), 팔달동(장태실), 사수동, 금호동 일대에서는 '매남송씨' 또는 '칠곡송씨'란 이름을 얻게 되었고 우금에 이르기까지 후손들이 화목하게 번성하여 활기찬 삶을 하고 있는 유향이 되었다.

 

 

 

 

 

매양서원의 정문, 양정문(養正門).

 

 

 

 

 

 

 

 

강당 오른쪽에는 사당인 상현사(尙賢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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